'전기차 화재' 관리사무소 야간근무자가 스프링클러 껐다(종합2보)
2024-08-09 14:13
경보음 울리자 정지 버튼 눌러…오작동으로 오해했을 가능성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김상연 기자 = 인천 대단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당시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밸브를 인위적으로 잠근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소방본부는 지난 1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서구 청라동 아파트 방재실에서 화재 수신기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을 한 결과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 결과 불이 난 직후인 당일 오전 6시 9분께 수신기로 화재 신호가 전달됐으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야간 근무자가 이 밸브와 연동된 정지 버튼을 방재실에서 누른 기록이 확인됐다.
화재 신호가 정상적으로 수신됐는데도 정지 버튼을 누르면 솔레노이드 밸브가 열리지 않아 스프링클러에서 소화수가 나오지 않는다.
이후 5분 만인 오전 6시 14분께 밸브 정지 버튼은 해제됐지만, 그 사이 불이 난 구역의 중계기 선로가 고장 났고 결국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밸브 작동이 멈춘 상황에서 소방 전기배선 일부가 화재로 훼손돼 수신기와 밸브 간 신호 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지하 2층에 있는 수조에 소화수가 90% 이상 채워져 있는 데다 소화 펌프가 정상 작동했을 때 주변으로 튀는 물 자국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토대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파트나 큰 빌딩의 경우 기계 오작동으로 화재 경보음이 울리는 사례가 잦다 보니 관리자들이 스프링클러와 경보기부터 먼저 끄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9년 9명이 사망한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와 연결된 복합수신기를 경비원이 고의로 꺼 피해가 컸다.
소방 당국자는 "전기차 화재 직후 경보기는 울렸다"며 "경보음이 나자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밸브를 잠그는 버튼을 방재실에서 누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불을 완전히 끄는 역할을 하진 못해도 불길이 확산하거나 주변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전기차 화재가 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스프링클러는 화재 감지 후 소방 배관에 물이 통하도록 설계된 '준비 작동식' 설비다.
이 설비는 수조부터 특정 밸브가 설치된 구간(1차 측 배관)까지만 물(소화수)이 채워져 있고 스프링클러 헤드로 이어지는 나머지 배관(2차 측 배관)은 평소에 비어 있는 형태다.
불이 났을 때 2개 이상의 화재 감지기가 작동해야 수문이 열려 물이 공급되고 불길에 헤드가 터지면 소화수가 분출되는 방식이다.
준비 작동식 설비는 감지기·밸브·제어반 가운데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소화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현장 감식에 참여한 국립소방연구원 관계자는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벤츠 전기차와 주변에 주차된 다른 차량 몇 대만 타고 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 당국자는 "수신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아파트 관계자 진술 등을 추가로 확보해 관련법 위반 사항에 대해 조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는 지난 1일 오전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던 전기차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렸다. 또 지하 설비와 배관 등이 녹아 정전과 단수가 이어졌다.
goodluck@yna.co.kr